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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공존을 위한 ‘공공’ 본문
공존을 위한 ‘공공’
사라 마자, 박원용 역,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책과함께, 2019.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낯설기에 따옴표에 영어를 병기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탈진실 현상에 그만큼 익숙해졌다.
대통령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대서 계엄을 선포했다. 사전투표지 위조, 전자개표 결과 조작 등 유튜버들이 주장해온 부정선거 의혹은 대법원이 조사 끝에 근거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통령은 부정선거 근거를 다시 찾아내겠다며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고 군을 동원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공작을 하려면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문제제기하라’던 자였다. 법치니 신뢰니 하는 말을 무서울 정도로 텅 빈 말로 만들어버렸다.
내란 중에 정적을 ‘수거’해서 살해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성직자, 연예인까지 학살 리스트에 올랐다.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 편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편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족하다는 태도가 팽배한 것이 탈진실 시대다. 탈진실주의자들은 자기주장에 모순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탈진실 시대에 진상규명은 더욱 곤란해진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판에선 과거사를 돌아보며 진실과 화해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성찰도 자리 잡기 불가능하다.
국회는 제2의 반민족 행위 조사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뉴라이트 매국 행위’를 조사하는 특별조사기구를 출범시키겠다고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반민족 행위로 지목된 ‘역사 주권 부정행위’의 실체다. 요동반도가 고조선 때부터 한국 영토였다는 주장을 의심하면 반민족행위로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환단고기』 같은 근거자료가 위서라고 비판하는 역사학자를 두고는 ‘일제 식민사학’의 적폐라며 청산대상이라고 공격한다.
공격을 받은 역사학자들도 격앙되었다. ‘사이비’ 대신 전문가들에게 역사를 맡기라고 목소리 높인다. 그런데 과연 누가 ‘진짜’ 역사가일까? 역사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역사가 공적 논쟁에 휘말릴 때마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책을 쓰고자 노력해왔다. 1980년대 후반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둘러싼 ‘역사가 논쟁’을 겪은 뒤 『20세기 사학사』, 『역사학을 위한 변론』, 『역사가 사라져 갈 때』와 같은 책들이 연이어 발표된 이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실의 존재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우려에서 ‘역사적 객관성’을 재확인하려던 노력이었다.
역사학자 사라 마자(Sarah Maza)가 쓴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는 결이 조금 다르다. 앞선 책들이 사학사를 다루며 전통적인 역사학, 그러니까 1970년대 이전 역사학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면 이 책은 이후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 책은 역사학자들이 국민국가의 역사, 엘리트 남성의 정치사, 문서보관서의 기록 등으로부터 점차 주변부 지역과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으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역사학이 짊어지게 된 질문들에 천착한다. 역사의 주체, 공간, 대상이 소수 엘리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고 넓어지면서 역사는 무너지기는커녕 더 깊은 성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는 그런 성찰에서 비롯한 질문이다. 전통적인 역사가는 기록을 무엇보다 강조해왔다. 전문적인 역사가는 가장 훌륭한 기록을 찾아 활용하는 방법을 훈련받았다. 그래서 기록을 다루는 방법론은 ‘진짜’ 역사가를 가르는 오랜 기준이었다.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는 이 지점에서 전문 역사가를 ‘사이비’로부터 차별화하는 기록의 기준에 대해 묻는다. 기록물 보관엔 선별과 통제라는 권력이 작동한다. 국립문서보관소가 국민국가 차원에서 집단기억을 위한 저장소로 창설되었듯 모든 문서보관소는 필요에 따라 기록을 선별하고 열람을 통제한다. 기록이 수집되고 보관된 방식에 따라 역사는 쓰이기 마련이다.
최근 역사가들은 기록되지 않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 구술사를 시도하고 있다.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는 이런 변화를 진보나 발전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에 따른 도전을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예컨대 전통적인 역사가들이 지적해왔듯 구술자의 진술은 연구자의 존재와 질문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달리지곤 한다. 그럼에도 기억은 기록에 담기지 않았기에 구술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구술은 진실을 보여주는가? 구술사 연구는 구술의 왜곡과 주관성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역사연구의 중심을 ‘사실 그 자체’로부터 ‘사실의 의미’로 옮긴다.
이런 변화가 진실을 둘러싼 논란에 충분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은 결국 상대적이란 말인가? 이 책은 여성이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과거의 고통과 불의의 실체에 대한 ‘제한적 객관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역사연구가 그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진실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과거를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을 따름이다.
그런데 역사가의 전문성 앞에 놓인 질문들을 외면하고 어떻게 진실의 경계를 세울 수 있을까.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는 역사가들이 해온 일과 당면한 고민들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역사가들의 고민을 누구와도 함께 나누고자 초대하려는 듯 말이다. ‘수거’나 ‘청산’처럼 상대를 절멸시키는 데 관심이 온통 쏠린 말들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성찰적인 태도다. 이 책은 역사를 공공의 것으로 만들도록 초대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보기 드문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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