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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여전히 전송되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을 조수아 기자 오래된 기억 하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5교시. 한국지리 선생님이 파리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던 그 날에 대해서부터.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수업을 이어가던 선생님은 결국 수업 종료 10분가량을 남겨두고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선생님 울지 마세요. 친구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발화되는 선생님의 목소리. 떨림을 감추지 못하던 그 목소리로 나는 10년 전의 참사를 기억한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나와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까지 꺼지지 않던 텔레비전 화면에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있는 배의 모습이 나왔다. 회색빛 바닷물에 잠..
텍스트는 열려 있다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오현지 요즘 들어 소설 읽기가 재미있다. 소설 연구자의 새삼스러운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고백하건대 원래 나에게 소설은 재미가 없었다. 수많은 소설 가운데 재미있는 텍스트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소설은 나에게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중독자로서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소설은 유튜브보다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학원까지 와서 소설 연구라는 전공을 택한 이유를 묻는다면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이 좋아서다. 흠모하는 사람을 쫓아서 무작정 연구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었다. 그런 내가 비로소 소설이 재미있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텍스트에 대한 인내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든 소설이 ..
20140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안산에 다녀왔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켜본 교실 TV로 세월호 소식을 처음 접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명찰을 달고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담담하게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유가족 앞에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남겨진 수많은 “보고 싶어, 사랑해”라는 편지 앞에서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던 그들을, 내가 20대 후반이 될 동안 영원히 어린 학생으로 남아야만 하는 그들을 나도 조금씩 잊어왔던 것은 아닐까. 부끄러움이 밀려와 방명록에 차마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6·25 전쟁 때 죽은 수많은 학도병은 기억하지 않으면서 죽은 자식들을 팔아 ..
우리가 무의미한 동작을 취할 수 없다면 김희령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우리의 언어와 움직임은 의미의 포화상태에 있고,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서로가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담긴다. 그것이 의도한 바이든, 의도하지 않은 바이든 그 의도를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치일까? 현재 우리 사회는 형형색색의 바둑돌이 서로의 집을 겨냥하고 있는 커다란 바둑판이다. 상대의 집을 부수기 위해서는 상대의 수를 읽어내야만 한다. 혹은 상대의 수를 읽었다고 주장하여야 한다. 돌들의 전쟁을 직관하는 입장에서, 이는 정치가 아닌 전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학원신문 4월호는 그러한 집단사회적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내가 살..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 작년이 아닌 올해로 봐야 고려대학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조형일 한국 스포츠에서 축구란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만큼 다른 종목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지위를 인정 받고 있다.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은 고려대학교 체육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사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시작이 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21년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 전시에서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 축구부의 창단을 1922년으로 설명하였다. 반면 『고려대학교 100년사』를 비롯하여 고 인권환 교수의 『고대유사』 등 고려대학교 출판부..
하루만 침묵하겠습니다 정재훈 기자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집에 가고 싶어만 할 것 같은 예비군 훈련은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서 훈련의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고 싶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 있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 큰 압박을 경험할 일도 없었다. 저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훈련 자체가 필요한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채 입장 순으로 받은 번호표를 목에 걸고 나란히 열을 맞추어 같은 행동을 반복함을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작은 ‘다름’을 관찰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마주한다면 더욱 그렇다. 예비군들은 저마다의 불만을 감추며 전투모를 착용하고, 지급되는 장비를 모두 같은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