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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조수아 기자 1943년,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윤동주 시인은 귀국을 앞두고 소풍을 떠난다. 교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지(宇治)시. 그는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우지천의 구름다리에서 사진을 찍고(이때 찍은 사진이 현존하는 그의 최후 사진이다), 친구들과 얼마간 웃고, 다시 자신의 하숙집이 있는 교토의 동쪽 끝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조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을지, 구겨진 수첩을 펼쳐 조선어로 시를 썼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수학 과정을 감시해 왔던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그에게 덧씌워진 죄명은 ‘재경도(在京都)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 피고 윤동주는 치열한 민..
성마르지 않은 호흡으로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윤희상 지리멸렬한 삶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패가 예정돼 있을지라도 타인의 통약불가능한(incommensurability) ‘얼굴’을 읽고자 하는 부단한 환대의 노력이 필요함을 환기했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연출 김석윤·극본 박해영) 최종화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가 뭐든 다 입으로 털잖냐. 근데 이건 안 털고 싶다. (...) 이 말들이 막 쏟아지고 싶어서 혀끝까지 밀려왔는데 꾹 다시 밀어 넣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 거다.” 극 중 삼 남매의 맏이인 염창희는 왈가닥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으로 폭발”하는 마음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 지현아 대신 그녀의 애인 임종을 예기치 않게 지키게 된다. ..
“한 번 흘린 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관용과 애정으로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라.” 살라흐 앗 딘, 아들에게 한 충고로 알려진 말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말들이 자리를 찾지 못 하고 떠돌아다니는 세상이다. 불과 5-6년 전에 담론과 진영, 사상과 주의를 대표하던 말들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뒤섞여 피아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가스라이팅’이나 ‘미러링’ 등의 말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성장’을,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이 ‘복지’의 표어를 외치고 있다. ‘공정’과 같은 말들은 훼손될 대로 훼손되어 모든 영역에서 만연한 능력주의의 신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천인공노할 침략을 감행했을 때 사용한 ‘나치’라는 말은, 이러한 예시들 중 가장 전형적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예가 될 것이다. 말이 말을 속이는 것이 가장 무서운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자신과 딱 어울리..
기억의 연소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김수연 이번 10월호 신문을 받아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백린탄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포털의 기사로 읽었다. 이 무기는 살갗에 닿으면 모두 연소할 때까지 계속 타오르게 만들어서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므로, 어떤 경우에도 민간인을 대상으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이 참전한 베트남전에서도 사용되었다. 불필요하다고 서술되었던 고통은 지금도 존재했고, 멀어 보이기만 한 곳의 전쟁은 어떻게든 우리의 과거와 맞물렸다. 신문을 읽으면서 그때와 지금의 아픔들을, 과거와 현재를 함께 생각해보았다. 어떤 것은 기억이자 역사가 되었지만, 기억이 되어버린 무언가가 아직 여기 남아 있다는 생각이..
상식의 항상성을 위해 상식이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낡는 세상이다. 문화현상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자고 일어나면 많은 것이 바뀌어 있는 세상에서 내일까지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상식을 확신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 유통기한이 긴 상식들은 오히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것들이다. 특히 정통성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그 속성상 대다수에 의해 오래도록 보전돼야 하는 상식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철거’가 오랜만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분을 산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마저 한동안 자취를 감춰야 할 정도로, ‘독립운동’은 한국에서 ‘상식이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사안의 역사적·정치적 문제들은 잠시 제쳐놓고(이에 대해서는 본지 본호의 1면 기사에 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