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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 김민조 (연극평론가, 연극비평집단 '시선' 필진) 사라져, 사라지지마 - 연극 연극은 사라진다. 연극이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1980)라는 곡이 40년 가까이 애창되고 있는 이유는, ‘연극’이 모든 신기루적 체험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우리의 심적 사전에 등록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극은 빈 공간에서 홀연히 나타났다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다가오고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일상의 성질,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로서의 삶이 본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질이기도 하다. 연극이 삶의 정지인 동시에 삶 자체에 대한 은유가 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연극을 기록하는 평론가는 반드시 연극의 저항을 경험하게 된다. 기억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언어라는 매개를 거칠 때 소실되는 ‘형언할 ..

심아진 (동화가, 소설가) 그날 밤, 나는 잠을 자다가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일어났다. 자기 전에 켜둔 수면등이 남편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비췄다. 물 좀 가져오너라. 그는, 당당하게 말하는 것만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거침없이 내게 요구했다. 나는 그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남편의 아버지, 곧 내 시아버지임을 알아차렸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시아버지에게 건네주자 그가 급하게 들이켜며 말했다. 내가 물 한 잔도 얻어 마실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시아버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뜻으로 물 한 잔을 더 떠왔다. 시아버지는 갈증이 많이 났는지 두 잔째의 물도 금방 다 마셔버렸다. 생활이 나를 살렸다. 먹고 살기 빠듯했으니까,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

김민조 연극평론가, 연극비평집단 시선 필진 “지금까지 나는 사랑에 관해서 썼다. (…) 그리고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그 모래사장에서 처음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김세희 소설 (2019)의 결말에서 화자는 여고 시절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던 목포의 모래사장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소녀가 자라 여대생이 되는 성장소설의 서사 속에서는 지워져야 했을 장소다. 그러나 소설은 한 소녀가 다른 소녀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적어주었던 곳으로 돌아가 그 단어를 온전히 발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서술되는 몸과 서술하는 몸이 조용히 화해를 이루는 순간 한 세대의 성장담 속에서 부인되어 온 퀴어적 정동의 복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세희의 원작을 각색한 연극 (극..

- 미니픽션 - 심아진 (동화가_소설가) 모의 신라 제25대 진지왕은 576년, 병신해(丙申年)에 즉위했으나 정치 혼란과 황음(荒淫) 등의 이유로 재위 4년 만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출가를 결행했을 만큼 불심이 깊었던 선대 법흥왕, 진흥왕의 뜻을 좇지 않은 반불교적 처신에 대해, 화백회의가 내린 결정이었다.《삼국사기》는 진지왕이 폐위된 그해, 즉 579년에 그가 죽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 죽은 진지왕은 살아생전 그가 취하려 했으나 취하지 못했던 여인 도화랑에게 나타났다. “살아 있을 때 지아비가 있다는 이유로 나를 밀어냈으나 이제 네 남편이 죽었으니, 더는 거절할 수 없으리라.” 진지왕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으므로, 여인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의 것이 아닌 향기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