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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오혜진 기획, 「원본 없는 판타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후마니타스, 2020. Q : 한국 문학사와 문화사에 관심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최근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과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기획을 비롯해 ‘페미니스트 시각’의 문화연구를 주도하고 계신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A : 어릴 때부터 소설을 비롯한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다만 탁월한 개인의 재능이라고만 여겨져 온 창작력 혹은 상상력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이해했을 때 책읽기가 더욱 흥미로워졌어요. ‘시대의 명작’을 단지 ‘천재 작가의 예외적 산물’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그런 상상력의 탄생 및 그에 대한 대중적 호응을 가능케 한 당대 담론과 시대적 분위기에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한지혜, 「토마토를 끓이는 밤」, 문장웹진, 2014년 1월 시선을 달리 취해 뭔가를 읽어내는 것이란 언제나 예측한 것보다 더 지난하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보다는 ‘무엇’을 읽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라 그 ‘무엇’이 어떻게 발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주 놓치는 것만 같다. 이것은 최근 부쩍 자주 목격되는 ‘모녀 서사’와 관련된 고민이다. 여기서 ‘모녀 서사’란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 서사를 의미하는데, 이 관계 양상 자체가 특별히 새로운 서사적 주제인 것은 아니다. 딸과 어머니가 등장하는 소설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최근에 부쩍 그 구현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데 시선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최근 문학장에서 사유하는 젠더 정체성과 관련돼 있는데, 서사들은 어떻게 남성 ..
-염동규 (문학평론가) 회의주의적 구체화와 ‘함께’ 해방을 믿기 - 리처드 왓모어 저, 이우창 역, 『지성사란 무엇인가?』, 오월의 봄, 2020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를 지향하는 연구자들이라면 반드시 탐독해야만 하는 이 책, 『지성사란 무엇인가?』는 책의 핵심적 내용인 ‘지성사 연구에 대한 방법론적 안내’라는 의미에 우선하여, ‘학술 운동 선언’으로 먼저 읽혀야 한다. 인문학 연구의 ‘전문성’이 아무에게나 의심받거나 참칭 당하고, 심지어는 인문학 연구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세계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은 채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낭만화나 힘 빠지는 자조에 그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이 책의 역자이자, 빼어난 지성사 연구자로서 ..
김재웅, 『고백하는 사람들: 자서전과 이력서로 본 북한의 해방과 혁명, 1945~1950』, 푸른역사, 2020 Q: 박사학위 논문부터 이번 책에 이르기까지 북한사 영역에서 꾸준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0년 북한사 연구의 현주소와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A : 연구의 한 분야로서 북한사(北韓史)학은 사실 1960년대부터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언제나 정치사가 중심이었고, 시기 역시 해방부터 전전(戰前)시기까지에만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지요.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많이 변화하고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연구자층이 두터워지면서 점차 연구 분야가 정치사에서 경제사, 경제사..
천정환(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한민국 독서사: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서해문집, 2018 Q1 : 박사학위 논문부터 현재까지 독서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서사 뿐만이 아니라 (신)문화사 연구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성과를 내고 계신데요. 처음에 어떻게 문학을 전공하시게 됐고, 어떤 계기로 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 일반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전공하시는 분들처럼 저도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문학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지향이나 희망도 갖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제 청소년기에는 문학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위상과 기능이 지금보다 훨씬 높고 클 때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쩌다가 이과 학과에 진학했지만..
- 염동규 (문학평론가) 아버지 없는 부성주의와 깨지 못한 슬픈 꿈들 마크 피셔, 박진철 역, 『자본주의 리얼리즘』, 리시올, 2018. 영화, 버라이어티 TV쇼, 광고, 사회비판적 성격을 지닌 콘서트, 문학 작품 등의 텍스트들을 종횡무진하며 전개되는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미학적 비판이다. 정말이지 피셔의 이 책을 읽노라면,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브로콜리너마저) 우리들의 삶이 뭐가 문제였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더욱이 제임슨, 지젝, 들뢰즈, 스피노자 등의 사유를 다양하게 참조함으로써 재치 있는 이론적 논변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 역시도 책 읽는 보람을 더해준다. 피셔에 의하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문화의 생..
- 선우은실(문학평론가) 견뎌내는 일에 대하여 -권여선,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9. 지겹다. 코로나 시대에 선뜻 적응하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지겹다는 것이었다. 작년과 같지 않은 오늘을 맞이하면서 오는 당혹스러움과 낭패감은 지겹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한몫했다. 좋으나 싫으나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시기에 좀처럼 외출을 하지도 누구를 만나지도 않으니까 새 학기를 맞이하지 못한 것만 같았다. 프리랜서의 생활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일도 공부도 제대로는커녕 하나를 겨우 해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물론 그저 기분 탓이거나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둘러대는 핑계일 수도 있다. 그저 핑계가 전부..
염동규 이 책의 대략적인 설명 구도는 다음과 같다. 서고트 족의 로마 침략에 따른 역사적, 종교적 혼란을 만회하고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체계화한 역사철학—이것은 고통의 속세와 행복의 내세를 날카롭게 대립시키고 속세=역사‘로부터의 구원을’ 유일하고 최종적인 구원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이 후대의 칸트, 헤겔, 맑스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세속화’를 거치게 되고, 마침내 벤야민에 이르러 완성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맑스는 종교의 삭제로서 이해되는 세속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몰아붙인 철학자이자 ‘진보’라는 종교에 다시금 빠져들고 만 철학자로 이해되고, 이에 반해 벤야민은 그의 가장 매력적인 단편인 「역사철학테제」가 보여주듯 신학을 다시 끌어들임으로써—신학의 이와 같은 재고용을 저자는 ‘수평적 세..